마음챙김으로 아이와 엄마 Win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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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5-02 13:22 조회1,405회 댓글0건본문
상담사 | 평촌센터 안윤일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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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육아 |
대상 | 아동 |
기타 |
마음챙김으로 온전히 나와 아이를 돌보고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어떨까요?
헬로스마일 평촌센터 안윤일 선생님
엄마들은 아이를 양육하면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나의 모습과 만날 때가 있습니다.'화내면 안 돼! 잘 타일러야지!','참자! 아이잖아. 배우는 과정이잖아.' '우리 아이가 조금 늦을 뿐이야! 기다려야 돼.'하고 머리로는 되뇌어
잘 알고 있는데 스트레스 상황이나 화가 나는 순간에는 벌써 소리를 지르거나 심지어는 때리고 있는 나...
왜 소중하고 사랑스런 나의 아이를 기르면서 나는 괴물같이 변할까요?
그리고 왜 항상 이런 나 자신을 미워하고, 아이에게 미안함과 죄책감을 느껴야 할까요?
수잔 뵈겔스와 케슬린 레스티포는 양육자가 능력이 부족해서 혹은 이기적이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이 아니라 양육에 있어 스트레스가 무척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많은 자료를 제공했습니다.
첫째, 사람은 다른 동물에 비해 오랜 시간 정신적·물질적·사회적으로 양육자의 시간과 돈, 자원을 요구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들은 18년 이상 나의 시간을 들여야 하고, 물질적으로 공급해 줘야하고, 사회적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정말 긴 인내와 노고가 필요하며 한둘만 낳은 요즘 시대 책임감과 부담감은 더욱 막중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둘째, 핵가족화로 부모는 자녀를 양육하는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졌습니다. 요즘은 가까이에 사는 부모나 함께 양육을 하는 남편이 도와주지 않으면 오롯이 엄마 혼자 육아를 담당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집안일과 육아, 심지어 사회적 일을 감당하는 엄마들은 과부하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아빠들은 어떤가요? 아빠들은 양육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 경우부터 양육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사람까지 '변동성’이 많습니다. 요즘 아빠들은 가정을 재정적으로 부양하면서도 세심한 양육을 해야 하기에 더 힘들 수도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아빠들과 정서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맺은 경험이 부족한 아빠들은 어떻게 자식들과 접촉을 해야 하는지 모르거나 낯선 경우도 많아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가 아이에게 가깝게 다가가거나 가벼운 접촉으로 돌보려는 의지를 보인다면 엄마에게서 느낄 수 있는 온화함과 친밀감 뿐 아니라 아빠만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지혜인 두려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키워 외부세계에 대처 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연구 보고가 많습니다.
멀티를 요구하는 요즘 시대 엄마들은 혼자 양육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주변의 도움을 찾아 헤매게 되고 ‘누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누가 도와줘야 우리 아이가 안전하지?’하는 고민을 하게 되고 주변의 지원이 없거나 부족한 엄마들은 아이를 키우며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셋째,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감정조절체계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자연과 거대한 동물의 위협 속에서 신속하게 ‘자동적인 반응’을 해야만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즉, 커다란 사자가 나타나면 무조건 도망가는 행동 다음에 ‘와! 잡을 수 있었는데...’ 혹은 ‘목숨을 구해서 다행이야!’ 하고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현재 우리는 그들에 비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스트레스나 불안 상황이 적습니다. 그러나, 아이와의 갈등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고대 우리 선조들이 위협에 처했을 때만큼 불안을 느끼고 ‘자동적 반응’을 하게 되지요. 예를 들면, 아이가 떼를 쓰는 경우 엄마는 바로 화를 내게 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기 조절을 못하는 아이로 크면 어떻게 험한 세상 살아가지!’하는 아이의 미래에 대한 불안이 위협으로 느껴지기 때문이죠.
이렇게 사회적·유전적 여건이 아이를 키우기 어렵고 스트레스를 야기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엄마들은 자신이 아이를 잘 키워야 한다는 커다란 부담감을 갖고 애쓰고 있다는 정서를 수용하는데 머뭇거리고, 혼자서 감당하기 외롭고 힘들다는 정서를 인정하는 것조차 옆에 제쳐두고 아이와의 관계에서 잘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만 하고 무조건 애써 키워냅니다. 육체적 심리적 상태는 나의 한계를 넘어서, ‘나 피곤해!’ ‘나 불안하고 우울해!’ ‘나 두려워!’ 라고 간절히 ‘나도 돌봄이 필요해!’ 라고 다른 이야기를 하는데도요.
단언컨대 엄마는 자녀를 기르는 동안 여러 선택지 앞에서 걱정, 또는 죄책감을 수시로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럼 엄마들이 ‘나 힘들어!’ ‘나 보살펴 줘!’ 하며 자신의 감정에 빠져 넋 놓고 있어야 할까요?
아닙니다.
물론 여러 가지 아동양육과 관련된 이론들·책들·양육방법들을 시도해 볼 수 있지만 거기엔 스트레스를 없애려는 목적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방법들이 안 통하면 또 좌절하게 되지요.
그냥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동적으로 나에게 일어나는 ‘화나 분노’ 를 알아주면 어떨까요?
양육 스트레스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순간 멈추는 거예요. 어떻게요? 들숨~~ 날숨~~호흡으로요.
그리고 먼저 엄마 자신의 신체반응, 정서, 생각에 집중해서 ‘괜찮아~~ 힘들었지!’ 하고 수용해 주고 잘 돌봐주면 어떨까요? 아주 충분히 나를 알아주면요. 엄마인 내가 나를 잘 돌봐주고 알아줘야 심리적, 육체적 여유가 생기고 그 에너지로 아이와 함께 하는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여 자녀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잘 들어주고 말할 수 있게 되거든요.
자녀들은 함께 있는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슬픔도 화도 분노도 기쁨도 즐거움도 맞이해 보는 거예요.
이것을 마음챙김 양육이라고 합니다.
‘의도적으로 지금 여기에 비판단적인 태도로 나와 아이의 몸과 정서, 생각, 행동에 주의를 집중하고 알아차리는 것. 수용하는 것’
저도 남자 아이 둘을 키우면서 많은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하루는 밤 10시가 넘었는데 두 아들이 시끄럽습니다.
서로의 방을 왔다 갔다 하면서 쿵! 쾅! 쿵! 쾅!
거기다 비명소리! 주고받는 엄청 큰 목소리!
조용히 내 일을 하던 나도 슬슬 머리에 열이 오르고, 손에 힘이 주어지고 잠시 진정하려는 내 입가가 굳게 다물어지는 내 신체를 느낍니다.
드디어 아래층에서 시끄럽다는 문자가 왔습니다.
일어나는 내 눈에, 어깨에 힘이 주어집니다. 나의 몸이 싸움태세입니다.
형제간에 지속되는 싸움에 대한 화!
나의 경고에 꿈쩍도 안하는 아이들... 무시당한 느낌!
지금까지 아이들을 지켜보고 섣불리 참견하지 않으려는 애썼던 나에 대한 안쓰러움!
아래층에서 매너 없는 집이라 생각할까봐 수치스러운 느낌!
아이들에게 참을 만큼 참았고, 경고할 만큼 경고했다는 생각에 더 가슴을 내밀며 아이들에게 돌진하려는 나를 들숨~~ 날숨~~ 멈춰 세웁니다.
‘속상하지! 내 말이 아이들에게 안 통하는 것 같아 아이들이 원망스럽지! 한밤에 민원전화 받을 정도로 아이들에게 같이 사는 예의도 가르치지 못한 거 같아 부끄럽고 창피하지! 아이들이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클 까봐 걱정스럽지!’
내 마음을 내가 알아주고 안아줍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아이들 위에 서기 위해... 남 핑계 대며 더 세게 아이들을 휘어잡으려는 나도 만납니다.
약간 쑥쓰러워지면서 걸음이 느려집니다.
아이들의 마음엔 어떤 것이 숨어 있는지, 작은 아들 방에 들어가 아이 말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오늘도 나와 아이들을 온전히 만나는 시간 – 보물을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