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더 알기 힘든 내 아이 -비워진 만큼 더 잘 보이는 내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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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07-04 10:40 조회2,037회 댓글0건본문
상담사 | 심리상담센터 헬로스마일 잠실센터 김서현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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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아는 만큼 더 알기 힘든 내 아이 -비워진 만큼 더 잘 보이는 내 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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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더 알기 힘든 내 아이 -비워진 만큼 더 잘 보이는 내 아이
심리상담센터 헬로스마일 잠실센터 김서현선생님
최근 들어, 상담을 하면서 양육자들이 가진 지식과 정보에 놀라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저에게 정보를 알려주시는 양육자를 만나기도 하지요.
그들은 자녀를 위해서 양육서를 읽고, 자녀교육 강좌를 찾아다니고, 때로는 스터디를 하기도 합니다.
양육자들에게 왜 끊임없이 정보를 찾아다니느냐고 물으면, “저희 아이를 잘 알고 싶어요.”라고 대답합니다.
사실 저도 두 아이의 엄마인 만큼 이런 마음에 공감도 되고, 그들의 모습이 낯설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다수의 양육자가 그렇듯 저 역시, 첫 임신 확인 후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이 임신·출산에 대한 인터넷 검색과 서적 구매였지요.
지인들을 만나면 임신과 출산에 관련한 정보를 교환하기 바빴고요. 아마도 많은 양육자가 비슷한 경험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출산 이후에도 목욕 법, 기저귀 가는 법, 재우는 법(수면교육이라고도 하지요),
트림시키는 법, 개월 수별 문화센터 강좌 등 정말 수많은 검색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이 시기의 양육자에게 왜 그렇게 하고 계시느냐 물으니 “우리 아이의 요구(needs)를 빠르게 알아차리고 싶어요.”라고 대답하시더군요.
우리 아이를 잘 알고 싶다는 양육자의 바람은 그 시기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뿐이지 계속해서 생겨나게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알고 싶다.’, ‘알아차리고 싶다.’가 가지고 있는 본질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많은 양육자가 가진 자신의 양육 불안과 두려움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과연 정보가 그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줄까요?
그동안의 상담 경험으로 볼 때, 아는 것이 많을수록 오히려 더 높은 불안과 두려움을 가진 양육자가 많았습니다.
또는 높은 불안과 두려움이 정보를 수집해라! 라는 명령을 내렸을 가능성도 있지요.
그리고 그렇게 수집된 정보는 “왜 나는 책(또는 TV)에서 본 대로 되지 않을까?”라는 죄책감을 불러일으킵니다.
정보 속 양육자와 그들의 자녀는 매우 이상적이고, 설사 문제가 있더라도 극적으로 해결이 되지요.
그러다 보니 우리 아이는 왜 이럴까?, 나는 왜 그대로 안 될까? 라며 우울해하는 경우도 많아요.
이러한 상황에 부닥치게 되면 새로운 정보의 탐색으로 이어지고 다시 끊임없이 순환하며 양육자를 괴롭게 만들지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아는 만큼 내 아이를 보는 눈은 탁해지고 맙니다.
노자는 ‘배움을 끊어내야 걱정이 없어진다(絶學無憂)’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배움, 즉 모든 정보를 가치 없는 것으로 치부하는 것이 아니라, 걱정을 유발하는 정보를 끊어내야 한다는 것이겠지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흘러넘치는 정보를 마구 받아들이는 것이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득이 아닌 독이 되기도 하지요. 아이를 위한다는 핑계로 얻어진 정보는 또 다른 기준을 만들어냅니다.
다시, 그 기준은 양육자가 정보를 통해 알아낸 틀로 아이를 보게 합니다.
아이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배움을 통해 아이를 더 제대로 못 보게 하는 것이겠지요.
이것만큼 걱정스러운 것이 있을까요? 아이를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했는데 오히려 아이가 더 알기 힘들어졌다니 말입니다.
아는 것이 많은 양육자가 늘어나는 만큼 상담을 하기 어려워지는 것 중 하나가 그림검사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많은 정보에 ‘오염’되어 있다 보니 세세한 표현까지도 의식적으로 만들어서 보여줍니다.
제대로 된 검사가 진행될 리가 없겠지요.
또한, 아이의 그림을 진단·평가 하려드니 큰 문제가 없는 아이가 병리적 문제가 있는 아이가 되어 상담실에 억지로 오게 되기도 하지요.
붉은색이 좋아 붉게 색칠했는데 분노가 많은 아이가 되어 의뢰됩니다.
이렇듯 양육자의 불안과 두려움을 비우기 위해 정보를 채움으로 대신하는 것은 알고 싶은 내 아이를 제대로 볼 수 없게 만듭니다.
끝도 없는 정보의 바다에서 체류하기보다 자녀의 눈을 바라보고 그 아이가 주는 정보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요?
서적과 매체, 강좌에서 제공하는 것은 그야말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에 불과합니다.
답이 아니라는 거지요.
그토록 찾고 싶었던 아이에 대한 ‘앎’은 우리 아이에게 있습니다.
아이가 보여주는 그 자체로의말과 몸짓은 지금 어떤 ‘앎’을 제공하고 있나요?
외부로부터 얻어진 정보를 통해 아이를 끌고 가고 있지는 않나요?
정보를 찾아 나서는 시간에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함께 놀아주세요.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들어온 정보가 없어 비워진 그 공간을 우리 아이로 채워보세요.
분별하지 않으니 간섭도 줄어들고, 그만큼 맑은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아이를 있는 그 자체로 살핌이야말로 누구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앎’이 됩니다.
그리고 아이가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정보를 수집하도록 도와줍니다.
‘아는 만큼 더 알기 어려운 내 아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글을 읽고 계신 어머니들도 배움을 위해 검색을 하셨겠지요.
지금 우리 아이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