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강한 부모입니까, 튼튼한 부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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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0-04-03 16:44 조회1,062회 댓글0건본문
상담사 | 대전센터 이현경 선생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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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
대상 | 아동,청소년,부모 |
기타 |
당신은 강한 부모입니까, 튼튼한 부모입니까?
헬로스마일 대전센터 이현경 선생님 칼럼
부모를 떠나 절에서 공부에 매진하던 석봉이가 한밤중에 부모를 찾아왔습니다. 공부가 잘 안되었을 겁니다. 어쩌면 읽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는 어려운 경전의 내용에 좌절했을지도 모르고 자신의 불안한 미래 때문에 모든 걸 다 놓고 싶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엄마가 다음날 장에 내다 팔려고 쿵쿵 찧어 만들던 떡 한 조각이 목이 메도록 먹고 싶어 졌을 수도 있겠지요. 엄마가 그리웠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건 뭐 우리도 너무 흔하게 겪는 일이니 특별한 상상력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어머니는 대체 얼마만인지도 모르는 제 아들을 보고서는 미동도 안하고 불을 끄고 떡을 썰기 시작합니다. 떡은 고르고 예쁜데 석봉이가 썼던 글씨는 삐뚤기가 한량이 없습니다. 당연하지요. 그 아이가 불을 끄고서도 훌륭한 서체를 뽐낼 수 있는 아이였다면 공부에 좌절하고 집에 오는 일이 벌어졌을 리가 없으니까요. 석봉이 엄마는 추상같은 한마디를 던집니다. "어서 다시 절로 돌아가거라!" 어머니의 가르침에 큰 깨달음을 얻은 석봉이는 그 밤길을 되짚어 다시 절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훗날 조선을 대표하는 훌륭한 명필이 됩니다. 자... 해피엔드.....
이 이야기는 강한 부모와 튼튼한 부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통 18개월 무렵의 아이들은 혼란스러운 양가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양가감정이란 서로 다른 두 가지의 감정이 공존한다는 뜻인데요. 이 시기에 공존하는 양가감정은 엄마와 분리되고 싶다, 하지만 엄마에게 돌아가고 싶다. 이 두 가지 감정입니다. 그러니 밖으로 나가고 싶은 자신과 엄마에게로 돌아가고 싶은 자기가 공존하게 되는 것이죠. 이 시기의 아이들은 그들 최고의 무기인 '변덕'으로 엄마를 미치게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약속시간에 늦은 엄마가 아이에게 신발을 신겨주려 하면 아이는 제가 신겠다고 떼를 씁니다. 엄마에게 분리되어 자율성을 획득하겠다는 표현인데요, 엄마가 꾹 참고 ‘그래, 해봐라’ 하고 바라보고 있으면 한참을 낑낑 거리다가 그래도 안 신겨지는 신발 때문에 엄마에게 찡찡거립니다. ‘엄마, 도와줘’ 라는 재접근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지만 주로 그걸 짜증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엄마들이 미치는 겁니다. 가뜩이나 약속에 늦은 엄마는 참지 못하고 신발을 후다닥 신깁니다. 아이가 엉엉 울며 다시 제가 신겠다고 저항합니다. 지금까지 천사 같이 사랑스럽기만 했던 아이와의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흔히 미운 세 살이라고 불리는 이 무렵의 아이들이 이런 행태를 보이는 건 사실 알고 보면 발달을 위해 저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아이들의 자연스런 발달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이를 훈육한다고 눈으로 제압하고, 단호하게 거절하고, 매로 다스리는 식으로 많이 하게 됩니다. 강한 부모들이지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시기에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육아는 아이가 변덕 부리는 것, 짜증 부리는 것을 견뎌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튼튼한 부모가 되는 것인데요, 그렇다면 강한 부모와 튼튼한 부모는 뭐가 다른 걸까요?
강한 부모는 아이를 제압합니다. 짜증을 못 부리게 하지요. 아이가 짜증내고 징징 거릴 때 부모에게도 불안이 올라오게 되는데 강한 부모는 이 불안을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그래서 아이의 입을 막아버립니다. 눈으로 아이를 제압해서, 화를 내서, 혹은 매로. 강한 부모에게서 자라난 아이들은 보통 밖에서 보기에 말 잘 듣는 모범생 같은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뚜껑을 열어보면 막상 그건 순함이 아니라 무기력인 경우가 많지요. 아이는 평생 관계 속에서 사랑받기 위해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을'이 됩니다. 자기의 부모와 초기에 형성했던 관계를 반복하면서 사는 것이지요.
튼튼한 부모는 아이를 견뎌줍니다. 아이가 짜증을 내고 힘들어하면 그걸 마음속에 담아뒀다가 안전한 말로 다시 아이에게 돌려줍니다. 그러면 아이는 자기 스스로 그 나쁜 감정을 처리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늘 튼튼하게 버텨주는 부모를 베이스캠프 삼아서 제 마음대로 세상을 향한 탐험을 해보게도 되는 것이죠. 이것은 부모가 아이를 잘 견뎌줄 때, 아이의 성공만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실패까지 견뎌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부모님들은 아마 대부분 이런 낭패감이 드실 겁니다. ‘어라? 우리 아이는 이미 세 살을 넘겼는데? 그럼 나는 이미 실패한 부모가 된 건가?’ 하고 말이죠. 다행스럽게도 사람에게 이 분리-개별화라는 것은 너무 중요한 과제인지라 또 한 번의 기회가 있는데요, 그때가 바로 사춘기입니다.
이제 사춘기에 아이들이 왜 그렇게 부모에게 반항하는지, 부모가 바라는 공부는 왜 그렇게 하기 싫어하는지, 짜증은 또 왜 그리 많이 내는 건지 이해하셨으리라 믿습니다. 사춘기의 아이들은 세 살 때의 아이들보다 훨씬 과격한 방법으로 제 부모를 시험합니다. 부모가 진짜 아이를 위하고 싶다면 이 모든 공격을 받고도 튼튼히 살아남아주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이때 또다시 "네가 감히 부모 말을 안 들어?" 하면서 강한 부모노릇을 하신다면 대략 난감입니다. 버티십시오. 그리고 꼭 아이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으세요. 그래야 아이도 강한 사람이 아니라 튼튼한 사람이 됩니다.
한석봉은 조선 최고의 명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마 최고로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을 겁니다. 자신이 아는 최고로 훌륭한 사람이 평생 자기 엄마였을지도 모릅니다. 조선 최고의 명필이 되었어도 마음으로는 늘 엄마에게 지고 있으니 아무리 애를 써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거대한 엄마 앞에서 자기 자신은 너무 초라했을지도 모릅니다. 만일 석봉이 엄마가 그날 밤에 하루 종일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부모를 찾아온 석봉이를 밥도 해먹이고 따뜻한 방에서 푹 재우고 스스로 다시 짐을 챙겨 공부하러 떠날 때까지 지켜봐줬다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봅니다. 옛날이면 가로등도 없고 공부하던 절로 돌아갈 때 타고 갈 막차 따위도 없을 시절이건만 그 바람찬 밤길 속으로 내모는 강한 어미와 그 어미의 사랑을 잃지 않으려고 어미의 꿈을 대신 이루기 위해 쉬지 않고 글을 읽었을 석봉이를 생각하면 마음이 안타깝습니다.
아이가 진짜 그저 좋은 대학에 가는 게 아니라, 좋은 삶을 사는 아이가 되게 하고 싶으신가요? 그렇다면 튼튼한 부모가 되세요. 아이가 공부를 좀 안 하는 것도, 내 말을 안 듣는 것도 견뎌주세요. 짜증 부리는 것도 좀 견뎌주시고, 내가 보기에 떨떠름한 친구를 사귀는 것도 좀 봐주세요. 그게 내 아이를 튼튼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내가 튼튼한 부모가 될 때 우리 아이도 튼튼한 사람이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