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어떤 이야기를 하면 될까요?” 상담에 처음 오신 내담자들께 가장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말이야 늘 습관적으로 하고 살지만, 상담에 와서 하는 이야기는 뭔가 평소의 일상 속 이야기와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지요. 실제로 아동 청소년의 경우는 놀이치료나 매체치료를 하기도 하지만 성인의 경우는 대부분 대화치료로 진행되니 상담에서 언어는 가장 중요한 치료 도구입니다. 그러니 상담에서 내담자와 상담자간에 오가는 대화는 일상에서 가족이나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와는 분명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겠지요.
원칙부터 말하자면, 내담자는 상담에 와서 어떤 이야기든 자유로이 하실 수 있어요. 상담자에게 폭력적인 언사만 아니라면, 최근 갑자기 견디기 힘든 감정이나 증상을 이야기하셔도 좋고, 주변의 꼴 보기 싫은 사람들 욕을 하셔도 좋고, 어젯밤 뒤숭숭했던 꿈 이야기를 하셔도 좋고, 어디 가서도 쉽게 털어놓기 힘든 비밀 이야기를 하셔도 대환영입니다. 요즘은 시국이 시국인지라 정치나 종교 이야기도 많이 하시지요. 상담자들은 내담자의 이야기에 대해 비밀을 보장해야 할 윤리적 의무까지 있으니 상담실은 아마 무슨 이야기든 털어놓기에 가장 안전한 공간 중 하나일 겁니다.
그렇지만 상담은 적잖은 시간과 노력, 비용이 드는 일이고, 또 내담자 본인의 심리적 고통을 완화하거나 자기 이해를 높이려는 분명한 목표가 있음을 감안하면, 상담에서 효과를 얻는 데 더 도움이 되고 결이 맞는 이야기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상담에 와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면 좋을까요?
우선 상담에 찾아온 내담자 자신, 즉 ‘나’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 좋아요. 상담자가 상담 시간 내내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은 오로지 눈앞에 계신 내담자 본인입니다. 상담에 찾아와서 상담 과정을 몸소 겪으면서 심신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사람도 내담자 본인뿐이고요. 그렇기 때문에 상담 장면에서 아무리 주변 사람들과 집단, 나라와 국제 정세의 문제점을 정확히 지적하고 낱낱이 고발하셔도 상담의 외부에 존재하는 그들을 직접적으로 변화시킬 방법은 없습니다. 상담에서는 그런 부당한 환경 속에서 고통받고 힘들어하는 내담자 자신의 마음을 섬세하게 알아차리고 보듬으며, 공감과 지지를 통해 새롭게 대처해나갈 방향성과 마음의 힘을 북돋는 쪽에 포커스를 두게 되지요. 결국 변화의 주체는 내담자 본인이니까요.
그리고 상담에서는 마음에 담고 있는 솔직한 이야기를 가감없이 들려주시면 좋아요. 이야기하면서 마음속에 올라오는 감정을 온전히 느끼고 드러내는 게 중요하지, 예의를 차려 아름다운 말로 표현할 필요도 없고, 일부러 감정을 누르고 차분하게 말할 필요도 없어요. 가끔 힘든 이야기를 하다가 감정이 격해져 평소에 자주 쓰는 험한 말을 무심결에 내뱉고는 사과하시는 분들이 계신데요. 상담자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런 진솔한 자기 표현을 격려하고 반기는 편입니다. 상담자는 내담자의 진실한 모습과 마음의 길을 찾는 데 집중하며, 내담자의 어떤 말이든 가급적 판단 없이 들으려 노력하니까요. 내담자의 말을 들으며 사회적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 좋고 나쁨, 교양있고 무례함을 판단하는 것은 상담자의 역할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객관적 사실 여부나 일관된 논리, 학문적 지식 등에 개의치 말고 내담자가 실제로 느끼고 살아가는 자신만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게 좋아요. 상담에서 관심을 두는 것은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내담자의 주관적인 심리적 현실이고, 내담자가 느끼고 경험하는 바가 곧 내담자에게는 진실이라고 믿으니까요. 바깥 세상에서는 사회적으로 통용되고 용인되는 규범과 상식에 따라 말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력이 있지만, 상담실 안에서는 어디서도 선뜻 말 꺼내기 힘든, 나만이 경험하는 내 세상을 언어화한다는 데서 다른 관계와는 차별화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이런 소리 하면 날 이상하게 보겠지” 이런 염려는 잠시 접어두시고 무엇이든 그 순간에 하고 싶은 말을 용기 내어 입 밖으로 꺼내어 보세요. 그렇게 일단 속마음을 꺼내놓고 두 사람이 함께 그 말들을 들여다보며 치료 목적으로 작업하는 것이 상담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