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랑하는 자녀 혹은 배우자가 겪고 있는 섭식장애 옆에서, 고통의 시간을 무력하게 감당하고 있는 부모와 보호자, 그리고 치료실을 방문한 섭식장애를 앓고 있는 당사자들을 만나야 하는 치료사 및 상담사들에게 새로운 돌봄 기술을 발견하고 익힐 수 있도록 안내받는 것이 가능함을 전합니다. 또한, 당사자와 가족에게는 섭식장애 전문상담사에 의해 주어진 가이드를 차근차근 실천하면서, 무력감이라는 독성짙은 고통으로부터 회복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전합니다.
세계보건기구(WHO) 기준 ‘정형화된 섭식장애’의 유병율은 인구의 3%이고 이를 한국에 적용하면 155만명에 달합니다. 체중은 정상범위에 있지만 거식증 양상을 보이거나 먹는 것을 두려워하는 ‘비정형화된 섭식장애’를 포함하면 미국에서는 인구의 9%가 섭식장애에 해당한다고 조사되었습니다. 즉, 섭식장애는 더이상 특정인의 질병이 아니라 누구든지 관련될 수 있는 질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2023년 국내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섭식장애 진료 인원은 2018년 8321명에서 2022년 1만 2477명으로 49.9% 증가했고, 코로나19 이전 대비 현저한 차이를 보이며, 그 중 80% 이상이 여성 환자이지만, 남성환자 또한 과거의 양상과 다른 모습으로 3~4배로 가파르게 증가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통계에 잡히지 않은 숨은 환자들은 훨씬 더 많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섭식장애에 대한 위험성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공유하고 있을 뿐 사회문화적인 공감대와 인식은 형성되지 못해 낙인에 대한 두려움으로 숨겨도 되는, 묵과해 버리는, 다른 병으로 위장하는 하는 식으로 병을 더 키웁니다.
국외에서도 섭식장애의 증가는 전문가들의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2024년 9월 미국 연구진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 사용시간이 길고 소셜미디어 등을 더 많이 접한 아동청소년들의 경우 섭식장애를 겪게 될 위험이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국에서는 국가적 차원에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영국의 공공보건의료를 담당하는 기관인 ‘국민건강서비스’(NHS)의 디지털 통계에 따르면, 2023년과 2024년 사이 섭식장애로 NHS에 입원한 환자 수는 처음으로 3만 명을 넘어섰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는 코로나19 이전 대비 약 60% 증가한 수치라고 합니다. 영국은 섭식장애에 관해 영국 내 모든 정당이 함께 보고서를 내어 국가 차원의 긴급한 개혁이 필요하다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섭식장애는 생명을 위협하는 정신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간과되었다! 의료 시스템 내 가장 큰 치사율을 보임에도 여전히 이 위기를 무시하고 있다!”
뇌 발달과 문제적 섭식 행동은 깊은 관련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영국 킹스 칼리지 런던 정신의학·심리학·신경과학 연구소(IoPPN)가 주도한 연구에 따르면, 사춘기 동안 뇌의 외부 층인 대뇌 피질의 부피와 두께가 감소하는 ‘뇌 성숙’ 과정이 성인기의 섭식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음을 밝히며, 연구진은 뇌 성숙 발달이 늦어지는 것이 제한적 섭식 행동(음식섭취 제한)과 감정적 또는 통제되지 않은 섭식 행동(부정적 감정에 의한 과식 및 폭식) 발달에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성인 초기(20~23세)에 제한적 및 감정적 섭식 행동을 보인 연구참여자들이, 그들의 10대 중반, 불안, 우울과 같은 내재화 문제뿐 아니라 과잉행동, 부주의 같은 외재화 문제를 더 자주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들의 내재화 문제는 시간이 지나며 더 심화되었고, 통제되지 않은 섭식 행동을 보이는 결과에 다다랐습니다. 그들의 외재화 문제는 나이가 들며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지만, 통제되지 않은 섭식 행동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섭식장애에 대한 잘못된 신념들을 지워가야 할 때이고, 교육과 치료 모두 병행되어 예방뿐아니라 효과적인 중재방략을 담당할 치료 실무 전문가를 다학제적 훈련을 통해 양성해야 합니다.
이에 섭식장애의 심리적, 생리적 측면을 이해하고, 신체에 드러난 섭식장애 징후들과 보이지 않은 정서적인 징후들을 의학적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보호자가 섭식장애 당사자 앞에서 회피하는 대신 상황을 바라보며, 적절히 꺼내볼 수 있는 말들을 시도하게 지원할 수 있고, 한 번의 실패에 포기하지 말고 다른 기회를 통해 나아갈 수 있음을 믿게 교육할 수 있습니다. 또한 보호자들이 보호의 한계를 인정하고 회복적 분위기를 위해 발전시킬 비유적 차원의 자원을 찾아보게 해야 합니다. 당사자와 보호자 사이의 의사소통이 의미의 소통까지 이어지기 위해서 상호 간의 교감, 듣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제적으로 안내해야 합니다. 더불어 사회 속에서의 연결과 참여 그리고 연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불안을 안심시키려다 쉽게 빠질 수 있는 보호자들의 함정들을 경고하여 통찰하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섭식장애 당사자가 보이는 섭식장애의 일부인, 과민함과 보이는 표정과는 다른 혼란스러운 감정, 소통 능력 저하를 가족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논의하면서, 보호자가 정서조절력의 모범을 보이고 가르치는 것은 매우 가치있습니다. 변화에 있어 전진과 후퇴의 반복은 당연하고, 당사자 옆에 머물면서 함께 토론하고 계획하며 인내한 시간들이 회복에 다다르게 하는 중요한 자원임을 상담사와 치료자는 보호자에게 자신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섭식장애 당사자의 폭식과 구토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변화를 지원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회는 인간 생존의 핵심인 ‘먹기’를 혼란스럽게 흔들 수 있는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섭식장애의 까다로운 증상과 행동들을 당사자와 보호자가 풀어갈 수 있도록 단계적인 전략과 전술을 자세하게 연구한 근거기반치료를 체화한 전문가가 회복의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당사자의 심각한 행위화 뿌리에 어떤 신념들이 있는지, 어떤 도구로 당사자의 논리에 반박하여 타협을 품은 협상을 할 수 있을까요? 더불어 당사자 옆에 있는 보호자가 자신의 실수를 보물로 여기면서 병에 압도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침착한 모습을 보여주는 자체가 회복의 모델링임을 알게 하려면 부모에게는 어떤 교육이 제공되어야 할까요?
우리는 절대 전능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연약함이 있습니다. 상담사든 당사자든 보호자든, 자기 안의 연약함과 닿아 그것을 이해해 가는 과정에는 뚜렷한 난관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연약함을 취약성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연약함은 타인을 향한 연민과 호기심의 마음을 갖게 하는 뿌리일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절망을 느끼는 섭식장애 당사자와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와 가족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부담에도 불구하고, 회복의 여정이라는 도전을 받아들이다 보면, 어느덧 원래의 삶으로 다시 다가섰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